1. GOOD! good 에브리띵즈 굳
좋다! 기분이 좋다. 컨디션도 좋다. 심지어 날씨도 좋다. 새벽엔 조금 춥지만 곧 해가 뜨면 따뜻한 봄 날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하하하 비바람으로 망쳐버린 지난 200K 때의 참사는 없을 것이다.
<새벽엔 춥고 낮엔 20도를 넘는다. PPL 스폰을 받지 않아서 모자이크 처리함>
낮엔 20도까지 올라간다하지만 새벽엔 아직 추워서 반쫄바지에 오래 입어서 늘어난 긴팔 티, 반팔져지, 바람막이를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긴팔 티는 과감히 버리고 바람막이는 주머니에 넣고 가뿐하게 자전거를 탈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 비 소식이 없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 완전 운수좋은날이다.
아침 7시에 반포에서 출발하여 유유히 한강자전거도로와 텅텅비어있는 아라자전거길을 지나 김포로 향한다. 존나 럭셔리한 2조짜리 자전거길을 달리니 모두가 행복한 선진국의 국민이 된 뿌듯함을 느끼며 미소가 넘쳐흐른다. 아라자전거길의 아스콘은 프리미엄 휘발유를 이용해 깔았을 것이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샤방샤방 나들이가는 기분이다. 그저 여유롭기만 하다. 가는길에 길을 헤메고 있는 늙은 양을 만나 앞에서 끌어 주며 달려간다.
김포 시골길을 샤방샤방 달릴것이라 예상했지만 염병할 트럭들이 옆으로 휙휙 지나가면 먼지가 풀풀 날린다. ㅈㄴ 짜증난다. 개쉐이들 좀 떨어져서 살살 달릴것이지... ㅆㅂ 경적소리는 어찌나 큰지 기차화통보다 클 것이다. 따라가서 한 대 쥐어박으려 했지만 참아본다. Share the road다 ㄱ새퀴들아. 작년 트럭에 치어 운명을 달리한 사이클 선수들의 명복을 빈다.
김포를 지나 강화와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바닷바람이라 역시 강바람보다는 거세구나. 강화 초지대교를 건너는데 바람때문에 몇번이나 휘청이며 힘겹게 다리를 건넌다. 바람이 세지만 해가 뜨니 역시나 따뜻한 기운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드디어 봄날이 오는건가. 쉼 없이 가뿐하게 첫번째 포인트에 도착하고 휴식을 취한다. 거세긴 하지만 봄바람이 좋고 봄 햇살의 기운이 상괘한 아침이로다.
<90년대 모든 청년들의 로망인 엘란트라, 추억의 드림카 모터쇼 모델이 되다 - 강화군 동막해변>
<강화도 뻘을 배경으로 뻘 사진, 밥 먹고 - 강화군 동막해변 오전 10:50, 70km>
2. 룰루랄라, 섬=산+바람
제1포인트 강화도남단 동막해변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11시경 석모도를 향해 출발 한다. 마니산을 휘휘 돌아 여객터미널로 향하는데 마니산 능선 끝자락 언덕이 계속해서 나온다. 남한산에 비하면 낮은 언덕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터미널에 도착해 배를 탄다. 배는 강화와 석모도를 쉬지않고 왕복한다. 운 나빠도 10분 내에 배를 탈 수 있다. 단, 새벽이나 늦은 밤엔 어떤지 모름. 뱃삯은 왕복으로 사람 1,000원에 자전거 1,000원. 맨날 무시당하던 자전거가 사람 대접을 받다니 뿌듯하다가도 돈 받아먹을 때만 자전거 생각해주다니 짜증나기도 한다. 맘 편히 휴식을 취하며 사진찍기 놀이
이때가 오후 1시경
<비둘기갈매기가 많다 - 석모도행 배>
<길 잃은 나이든 양과 함께 원샷 - 석모도행 배 오전 1:00, 95km >
석모도에 위풍당당 입성하여 곧바로 두번째 포인트를 향하여 전진... 하지만 눈 앞에 10% 경사의 언덕이 가로막는다. 허걱...허걱... 헉.. 헉... 높이도 꽤 높다. 힘겹에 언덕을 오르면 신나는 내리막이 나오...나와...야 정상인것을 마파람이 브레이크를 대신해 몸통을 후려 갈긴다.
석모도 보문사 입구의 제2포인트에서 인증을 받고 섬을 한바퀴 돌아 다시 강화도로 돌아와 제3포인트를 지나 강화읍내, 한강신도시를 지나 일산대교로 향한다.
<석모도에서 나오는 배 안, 쉼 없는 언덕에 조금 지쳐있는 상태- 강화행 배 오후 4:20, 115km>
강화에서 언덕이 너무 많아 길 잃은 어린 양의 미니벨로로는 준프로급의 두 선수를 따라오지 못해 뒤쳐지고, '자신을 버리고 먼저 가라'는 짧은 메시지를 받고 앞으로 향한다. 아... 역시 프로의 세계는 비정하다. 하지만 제한시간 20시간 내에 도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자기위로를 해본다.
3. 난 누구 여긴 어디
<일산대교 남단... 지쳐서 멘붕이 올 수준은 아니지만 지쳐있다. 일산대교 남단 오후 6:16, 160km>
아침 밥 먹을때 제대로 한 번 쉬고 배 탔을때 편히 쉬고 편의점에서 틈틈이 쉬고 계속 달리기만 했더니 지친다. 쉬는 시간을 빼고 10시간, 약 160KM를 달려왔다. 섬을 나오면 바람이 잦아들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버리려고 했던 긴팔 티는 계속 입고 있고 바람막이도 계속 입고 있다. 일기예보는 20도 이상 올라간다며... 믿은 놈이 잘못인가...
<초 장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파주운정 U-city 유비파크 - 오후 7:15>
파주운정 신도시를 지나니 어둠이 내려온다. 이후로는 생각 없이 달렸다. 어깨가 아파온다. 목이 아파온다. 여기가 어딜까 생각은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다. 파주LCD단지가 근처에 있나 보다. 문산 읍내를 지나나 보다. 이런 북쪽까지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신세계다. 옆에 강은 아마 임진강일것이다. 강 너머 조금 더 가면 북한 땅이겠지. 북쪽으로 오니 언덕이 훨씬 자주 나타난다. 역시 북쪽이라 산이 많은 건가. 점점 지치고 허기진다. 어쩔 수 없이 밥을 먹는다. 기운이 부족해 말도 아끼게 된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생존 본능에 이끌려 밥을 먹는다. 밥 먹고 다시 출발.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
힘이 빠져 말도 안 나온다. 지난 비오는 브레베에서 걸린 감기 기운으로 목소리도 크게 안 나온다. 말을 해도 강풍에 휩쓸려간다. 친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된다. 그저 닥치고 달린다.
이미 이곳은 어딘지도 모른다. 사람도 살지 않는다. 불빛이라곤 자전거 라이트가 전부이다. 집도 없고 창고도 없고 공장도 없다. 자동차도 없다. 가로등도 없다. 찻길 중앙선이 흐릿하게 보이다말다를 반복한다. 조금만 방향을 잃어도 길가 논두랑으로 빠진다. 정말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다. 라이트는 1미터 앞 반경 20cm 정도만 흐릿하게 비출 뿐이다. 감각에 의지하여 앞으로 기어간다. 바로 앞에 움푹 파인 싱크홀이 자전거를 잡아먹을 것 같다. 바로 옆에 논두랑으로 꼬라 박을 것 같다. 무섭지만 가야할 길이 있고 뒤에 친구가 바로 따라 오고 있다.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언덕은 쉼 없이 나타난다.
강을 건넌다. 아마 임진강일것이다. 근데 임진강 북쪽은 바로 북한 아닌가? 북한이 폭탄을 쏘면 북한으로 도망가는게 더 안전한가?
앞에 불빛이 여러개가 보인다. 작은 마을이다. 모양새를 보니 시골 면내이다. 이번 코스의 최북단 연천 백학면 다섯번째 포인트 드디어 도착이다. 빛을 보니 힘이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가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이미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내가 발견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이미 표정을 잃은지 오래 - 연천군 백학면 오후 10:38, 222km>
4. 파이팅...
힘겹게 어둠을 뚫고 오느라 예정 시간에 조금 지체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밥을 먹은 상태이고 아까 어둠속에서 너무 저속으로 왔기 때문에 열심히 달리면 20시간 내에 골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골인점을 향해 앞으로!!!!!!!
<차가 지나가야 겨우 앞이 보이는 언덕길, 아주 드물에 켜져 있는 가로등 - 파주시 적성면 오후 11:45, 240km>
내가 너무 큰 걸 바랬던 것인다... 언덕은 더욱 가파르고 여전히 불빛이 없는 시골 길이 이어진다. 시간내에 들어가긴 이미 불가능이다. 골인을 하려면 송추 북쪽 언덕과 북악산을 넘어야한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와졌다. 완주를 목적으로 꾸역꾸역 남쪽으로 향한다.
평소 자전거 탈때는 일상에서 못했던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명상을 하며 페달을 밟는다. 자연을 느끼고 경치를 즐긴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기계적으로 페달을 돌린다. 경치따위 없다. 눈 앞에 뭐가 있을지 무섭기만 한다. 파이팅이다. 힘내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싸움이다. 무엇과 싸우는지도 모르겠다.
어깨가 너무 결린다. 다섯시간을 넘도록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핸들을 계속 꼭 잡고 있었다. 허리가 쑤신다. 언덕을 꾸역꾸역 오르니 허리에 더욱 무리가 온다. 16시간 가까이 달리니 회음부가 아프다. 성감대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코스 만든 사람을 원망한다. 밤길과 언덕을 달리다가 잠시 앉아 몸을 추스린다. 비가 온다. 그러하다. 그렇게 우리의 300 브레베도 끝이 난다.
<끝 - 양주시 남면 다음 날 오전 12:40, 250km>
★ 완주 하려면 새벽 4시에 출발해야했다. 이른 새벽 한강, 아라자전거길, 김포 등 불켜진 곳을 달리고 파주 연천 시골길은 해가 떠 있을때 통과했어야 했다. 처녀 출전자의 한계이다.
휴식을 최소한으로. 밥은 뜨거운 국물을 피한다(밥 먹는데 오래 걸림). 주문 후 바로 나오는 음식으로 선택. 혹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대체. 초코바와 에너지겔을 꾸준히 섭취한다. 배불러도 먹어준다.
너무 힘들어 가끔 말하는데 짜증이 섞여 나왔다.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뭐 일단은 미안한 마음으로 충분하다...고 혼자 생각함. 서두를땐 서두르지만 기본적인 여유를 잃지 말자.
뒤에 친구가 수신호를 항상 주시하는게 아니다. 긴급 상황이나 정지할때 만이라도 큰 소리로 '정지!'라고 말해줘야겠다. 아! 앞이 전혀 안 보여서 그런건가?
<백학과 북악 중간 지점에서 브레베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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